[비석 내용]
서리가 오기 시작하면 반드시 굳은 얼음이 얼고야 마는 것은 필연의 이치인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한 가지 두 가지 일이 외국에 침식되니, 계속 이와 같이 나간다면 몇 날 몇 달이 못가서 전국(全國)의 권한이 외국에 모두 양도되어, 태아(太阿 보검의 이름)의 칼자루를 거꾸로 쥐게 되는 후회를 남기게 될지 어찌 알겠읍니까
월남 이상재 선생
[인물 설명]
호는 월남(月南)이며, 충청남도 한산에서 태어났다. 1867년에 상경하여 박정양의 문객으로 있으면서 세계 정세에 눈을 떴고, 그의 1881년 일본시찰과 1887년 미국 공사 부임에 동행했다. 그 후 학부참서관 등 정부 고위직을 역임했고, 1896년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였으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강제로 해산당하면서 검거되었다가 풀려났다. 1902년 개혁단 사건으로 다시 구금되었다가 1904년 출옥했다. 1908년 황성 기독 청년회(YMCA) 종교부 총무 및 교육부장을 겸임하면서 종교운동과 청년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3·1 운동 때에는 막후에서 기독교와 천도교가 합작하는 데 큰 역할을 하여 한 때 구금되었다. 1921년 조선 교육협회 회장으로 북경에서 열린 만국기독교 청년 연합 대회에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3년 조직된 소년연합척후대 초대 총재가 되었고, 이듬해 조선일보사 사장, 1927년 신간회 초대 회장이 되는 등 민족 지도자로서 명망이 높았다. 1927년 3월 77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쳤다.
! 해당 내용은 독립기념관 시어록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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