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 내용]
남파(南坡) 박찬익(朴贊翊) 선생 어록
대의(大義)에 사는 사람은 항상 소아(小我)나 소의(小義)나 소이(小利)나 소국(小局)에 구애되지 말아야 하며 더구나 명리(名利)를 쫓아서는 안된다 모름지기 우리는 공명심을 버리고 조국 독립에 무명의 전사가 되자
[인물 설명]
호는 남파(南坡)이며,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항일 학생 운동을 하다 관립상공학교에서 퇴학당하고, 1906년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0년 관립공업전습소를 졸업하고, 경술국치 이후 동지들과 국권 회복 투쟁을 벌이다 일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만주로 망명하여 화룡현 삼도구에 한인 학교를 세우고, 서로군정서의 요직을 거쳐 상해로 가서 신규식과 동제사를 조직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고, 이듬해 임시정부 대표로서 신규식과 더불어 손문을 방문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처음으로 정식으로 승인케 했다. 그 후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후부터 해방까지 임시정부의 중국에 대한 외교 책임을 전담했다. 1940년 임시정부 법무부장이 되고, 광복 후 임시정부 주화(駐華) 대표단장으로 계속 현지에 머무르면서 동포들의 생명·재산 보호와 생업 안정 및 안전 귀국을 위해 일하였다. 1948년 조국에 돌아와 이듬해 생애를 마쳤다.
! 해당 내용은 독립기념관 시어록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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