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석 내용]
석정 윤세주 열사 어록
우리의 제 1차 계획은 불행히도 파괴되고 무수한 동지들이 체포되어 처벌되었지만 체포되지 않은 우리 동지들은 도처에 있으니 반드시 강도 왜적을 섬멸하고 우리의 최후 목적을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다.
1921년 의열단 제 1차 국내특공거사 사건 재판정 진술 중에서
[인물 설명]
호는 석정(石正). 경상남도 밀양군 내이동에서 출생하여, 밀양공립보통학교·사립 동화학교·서울 오성중학을 수학하였다. 1919년 밀양에서 3·1 운동 만세시위 주도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그 해 11월 길림성에서 ‘의열단’ 창립에 참여하였다. 1920년 6월 의열단의 국내기관 총공격 거사 실행 직전에 서울에서 일제에게 피체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1927년 2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1931년 9월까지 밀양청년회·신간회 밀양지회·중외일보 기자로 활동하였다.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32년 3월 중국으로 재망명하여 1935년 9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교하였으며, 졸업 후 교관을 역임하였다. 그 후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 ‘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겸 훈련부장, 호북성 강릉의 중앙육군군관학교 특훈반 교관을 역임하였다. 1938년 10월 호북성 한구에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여 정치조 훈련주임 겸 한글본 기관지 편집주임을 맡았다. 1941년 조선의용대의 화북진출 결의에 따라 제 3지대 정치위원이 되어 대원을 인솔하였고, 그 해 7월 산서성 요현에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결성하여 간부훈련반 정치교관을 담임하였다. 1942년 태항산지구에서 일본군에 맞서 ‘반(反)소탕전’을 전개하던 중 적탄에 피격되어 그 해 6월 3일 향년 42세로 순국하였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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