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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글을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독립기념관 시어록비(완)

[독립기념관 시어록비] 3 이항복

by 니들이게맛을아냐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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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내용]

 

국가라고 하는 것은 큰 그릇이라.

한 사나이의 힘으로 상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한가지 일로 그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하루 아침 하루 저녁에 갑자기 망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나라가 장차 망하려면 반드시 백가지 일이 다스려지지 아니하고 백가지 폐단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백가지 재앙이 미리 경고해 보이다가, 그래도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장차 나라가 흥하려면 반드시 백가지 일을 다 잘 살피게 되고 백가지 폐단을 다 잘 물리쳐서 백가지 재앙을 되돌아 보기 때문에 나라일이 곧 잘 다스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망하게 되는 까닭을 생각하고 흥하는 까닭을 강구하여, 전날하던 일을 돌이켜 보고 그 모든 일을 경신(更新)하려 하지는 아니하고 따로 다른 방책을 찾고자하니 이 점 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1593(癸巳) 백사 이항복

문집 제 5권 란후론(亂後論) 시사차(時事箚)에서

 

 

 

[인물 설명]

 

호는 백사(白沙)이며, 서울에서 태어났다. 1580년 알성 문과 병과에 급제하였고, 1589년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1590년 호조참의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의주로 호종(扈從)했다. 그 후 형조판서로서 도총관을 겸하다가 다시 대사헌을 거쳐 병조판서가 되어 이덕형과 명나라 원병을 요청하자고 주장하는 한편, 안으로는 전국의 근왕(勤王)의 군사를 모집했다. 임진왜란 이래 5번이나 병조판서로서 병권을 잡고 활약했으며, 임진왜란 중 난의 뒷수습을 하는데 크게 힘쓴 명신으로, 당쟁 속에서도 분당에 가담하지 않고 그 조정에 힘썼다. 62세로 함경북도 북청 귀양지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항복 비석 점역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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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 설명 점역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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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내용은 독립기념관 시어록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점자번역본은 첨부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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