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 내용]
임금의 한 생각에 나라의 치란은 판가름 날수가 있읍니다 그러나 가장 어리석으면서도 지극히 두려운 것이 백성의 마음인 것입니다 공평하고 인자한 정사를 펴 민심을 수습 하셔야 할 것이며 새로운 무기를 제조하고 군사는 무예를 조련시켜 전 장병을 정병으로 양성하여 외침에 대비해야 하며 지형의 요해한 곳을 살펴 방어진을 설치하여 영원한 자주국방의 대책을 세워야 하겠읍니다
임진왜란시 어지러운 국정을 수습키 위하여
1594년 선조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 시무팔조(時務八條) 중의 구절
한음 이덕형
[인물 설명]
호는 한음(漢陰)이며, 서울에서 태어났다. 1580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직된 후 이조좌랑, 대사성 등을 역임하고, 1592년 31세 때 예조참판에 올라 대제학을 겸임했다. 이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지중추부사로서 일본 사신과 화친을 교섭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임금을 정주까지 호종하고, 그 길로 청원사가 되어 명나라 원병을 지원 받는데 성공했다. 귀국 후 한성부 판윤이 되고,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접빈관이 되어 줄곧 그와 행동을 같이했다. 1595년 경기·황해·평안·함경도 4도 도체찰부사를 지냈고, 1598년 우의정·좌의정에 차례로 올랐다. 1601년 행판중추부사, 경상·전라·충청·강원도 4도 도체찰사가 되어 전후 민심 수습과 군대정비에 노력했고, 대마도 정벌을 건의했다. 그 후 잠시 한직에 나가 있다가 1601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영의정에 다시 올랐으나 1613년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에 반대하다 사직되어 양근(楊根)에서 일생을 마쳤다.
! 해당 내용은 독립기념관 시어록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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